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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리스 힐튼이 도착했습니다


패리스 힐튼이 곧 도착할 예정이라는 클럽 앞은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멀뚱히 조명만 밝히고 있는 포토월 앞으로는 사진기를 들고 자리를 꿰찬 기자들이 연신 시계를 쳐다보며 자리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고, 클럽에서 고용한 경호원들 역시 신경이 곤두설 대로 곤두선 '왜 하필 오늘이냐'는 표정으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나마 마음 편한 쪽이라면 벽 쪽에 기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클럽 입구 쪽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는 무리들이다. 그들이 신경 쓸건 그녀의 도착일 뿐이지 좋은 사진이라거나, 안전 같은 건 아닐 테니 말이다. 그 앞을 유유히 지나가던 승용차들도 이게 웬 소란이냐며 한번씩은 창문을 내려 본다.
아 하고 픽 웃고는 다시 창문을 올리고 어딘가로 슈웅 떠난 차가 열두 대, 끝까지 차창을 내린 채로 이 상황을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 다섯 대, 그러거나 말거나가 세 대.

나는 가든 히터가 뿜어내는 열기 아래에서 고급 정보들과 아닌 정보들을 분류하는데 골몰하고 있었다.
"도대체 그녀는 언제 도착하는 거야?" "이건 고급정보인데 말이야..."로 시작되는 대화들은 이곳저곳에서 가지를 늘어뜨리고, 나는 그런 대화들을 어디서건 곧잘 주워듣는 능력에 스스로 감탄하곤 하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마치 구세주를 기다리는 심정이 됐다. 구급차가 지나가도 "왠지 그녀가 탔을 것 같고"(마치 깜짝쇼처럼 말이야!), 탱크 같이 생긴 대리운전 광고차가 지나가도 "분명히 저거야!"란다.
그러나 진짜 타이밍은 고급정보나 깜짝쇼 보다는 표정에서 발견되곤 한다.
한쪽 귀에 건 이어폰으로 속닥속닥 귓속말하길 즐겨하는 경호원들의 표정이 변했다. 저건 분명 '왜 하필 지금이냐'는 표정인 것이다.

패리스 힐튼이 도착했습니다. 그녀가 도착했다고요! 물러나세요!
골목의 인파는 서로 뒤섞여 지금 막 도착한 까만 자동차를 둘러쌌다. 경호원과 수행원이 차에서 먼저 내리고, 1분 정도의 텀이 이어진다. 상황 점검이자 극적인 효과를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 바로 이 1분이다.
다 됐다는 싸인이 썬팅된 차창 안으로 전해지고 드디어 그녀가 발을 디뎠다.
원, 투, 쓰리.
나는 나도 모르게 박자를 맞춰 손가락을 튕기며 그녀를 향해 주문을 걸어준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녀는 정확히 원, 투, 쓰리 -다른 말로 하자면 짜, 라, 란- 그 박자에 맞춰 완전한 패리스 힐튼으로 변신했다. 내가 던진 박자가 아니더라도 그녀는 분명 누군가의 박자, 아니 어쩌면 어떤 마법 같은 것에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손을 하늘높이 치켜들었다가, 근사하게 한번 웃고, 발걸음을 떼는 그 순간.
그것은 패리스 힐튼이 도착했다는, 경계를 풀었다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모두를 사랑하기는 힘들겠지만) 선언이자 그 자체로 유려한 퍼포먼스였다.
무너지는 것 같기도 하고, 우뚝 서는 것 같기도 하고, 즐거운 것 같기도 하고, 뭐 아닌 것 같기도 한.

패리스 힐튼은 일찍이 상속녀이자, 모델, 영화배우, 가수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기도 했지만 그녀를 가장 돋보이게 하는 건 '도착하는 사람'이라는 전혀 알려진 바 없는 직업을 창조했다는 데에 있다.
그녀는 그 순간을 위해 세팅하는 데 드는 시간(드레스를 고르고 머리를 손질하는)과 도착한 곳에서 절대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원칙 같은 것만 가지면 된다.
그리고 그 새로운 직업으로 말미암아 파생된 다른 직업의 변화로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다이내믹한 표정으로 타이밍을 들키고야 마는 경호원, 고급정보를 퍼뜨리는 (그러나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사람, 도착을 수집하는 사진가, 그 아름답고 허망한 순간에 대해 A4 한 장을 채워야만 하는 기자 같은 것들을 예로 들 수 있다.

글.김신형 사진.최영교
(매거진 am.i vol.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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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aytime | 2007/12/26 02:39 | you look good to me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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