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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과 할머니, 조복례


그 모양이 마치 학의 모가지 같다 하여 가학재로 이름 붙여진 고개를 끄억끄억 넘어 길을 걷고 있었다. 방금 지나친 뒤편에서 야트막한 소리가 들렸다. “학생!” 텃밭에 앉아 곡괭인지 뭔가를 들고 있는 할머니 한분이 계셨다. “예. 할머니.” “어디가우?” “조복례 할머니 뵈러 가요.” “호호호, 내가 기여.” “네?” “내가 조복례라고이. 호호호.”
한달음에 달려가 인사를 건네자 “누가 날 보러 온다고 하는디, 왠지 학생 모습을 보니 기 같은겨. 그래서 내가 함 불러봤제.” 할머니는 어려운 스무고개를 맞춘 아이처럼 기뻐하셨고, 나 역시 단번에 나를 찾아준 할머니가 고마워 벌써부터 신이 이만큼 났다.


“여기가 다 할머니 밭이세요?”
“어이. 여기 마늘이고, 여기는 양파, 여기는 깨...”
할머니는 깨를 덮은 검은 비닐을 걷어 보이며 “깨가 요렇게 심는 거여. 살짝 덮어놓으믄 깨가 열려. 아주 주렁주렁 널어.” 주렁주렁 넌 할머니의 수확물들은 당신이 먹고, ‘자슥들’도 주고, 그래도 남으면 주말에 초당 앞에 나가 자루에 또 한 번 주렁주렁 널고 관광객들에게 팔기도 하신다.
어려서 결혼을 하고 귤동마을로 오신 할머니는 여든 살이 된 지금, 혼자 생활하시며 매일같이 밭에 나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키우고 가꾼다.
“그래도 혼자서 잘해. 혼자해도 영락없이 해. 피곤하기는 해도, 영락없이 해.”
“자슥들은 이런 것도 못하게 하제. 그래도 뭐 하러 집에 퍼져 있나? 운동도 되고, 날만 좋으믄 매일같이 일하고 살제.”
옥수수, 콩, 유자, 매실...하나하나 할머니의 소개가 이어질 때 마다 나는 탄성 밖에는 지를 수 없었는데 할머니는 그저 호호호 웃으며 “촌에서 살라믄 이거저거 다 해야제. 그란디 올해 매실이 잘 열었구마이. 쩌렁쩌렁하니.” 할머니의 키만큼 야트막한 매실 나무 앞에 서서 “참 귀여워. 이것이 겨울에 꽃이 피거든. 근디 그 때 우박이 내려서 걱정이 이만큼이었는디, 다행히 잘 열었네. 토실토실하니 귀엽제?”

가을부터 봄까지 다산초당에 올라가본 사람이라면 할머니가 직접 만든 유과를 한번쯤 맛봤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할머니의 유과는 마을 어르신들의 사랑방이자 관광객을 대상으로 주말 시장 역할을 하고 있는 초당 앞 공터의 인기 품목이다.
언젠가 할머니가 밭에 찹쌀 나락을 깔았는데 논에서 물 먹고 자란 게 아니고 밭에서 비만 바라보고 큰 나락이라 쭈굴쭈굴하니 쭉정이 나락이 돼버렸단다. “허탈한 맘에 에라 모르겠다 하고 방앗간에서 곱게 빻아다 유과를 만들어 봤제.”
“쌀을 불렸다가 방앗간에 가서 빻아다가 다 쳐가지고 와. 방맹이로 얇게 밀어갖고 방에다가 널어. 적당하게 말려갖고 기름 냄비에다 100도로 끓여서 벌벌벌벌 넣고 건지고를 부지런히 하제. 이래 갖고는 엿을 붙여, 담에 밥풀을 튀겼다가 맷돌을 갈아다가 설설설설 붙여.”
벌벌벌벌 설설설설 입에 바삭하게 들어가 사르르르 녹는 유과 맛이 감돌아 “할머니 저도 유과 먹고 싶어요.” 어디서 떼를 쓰고 있는데 “여름에는 눅눅하니 못하제. 10월부터 4월까지 계속 만드니께, 그 때 또 와.”

1시간 남짓의 시간 만에 이곳에 다시 들릴 이유가 하나쯤 생겼고, 또 언젠가 이곳을 생각하며 ‘안녕하실까?’ 허공에 안부를 올릴 한 분이 생겼다.
뭔가 그렁그렁한 마음이 돼버려서 “아이고. 봄 여름엔 농사짓고, 가을 겨울엔 유과 하고. 우리 할머니 너무 바쁘셔~” 더 촐랑한 말투로 내 마음을 감추고.
“유과 그거이 만드는 게 참 고되. 그랴서 허구언날 고만해야지 고만해야지 하는디, 와서 사먹는 사람들이 옛날 맛이라고 너무 좋아하니께 그만 둘 수가 없는 겨. 근디 학생! 와 거서 있어? 요 그늘로 들어와 앉아.” 할머니의 마음은 끝이 없고.

글과 사진.김신형
(http://dasanchodang.com/)
by playtime | 2008/01/14 22:47 | you look good to me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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