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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혁의 이제 막 시작된 이야기


그는 참 묘하게도 생겼다. 흔히들 쉽게 나누곤 하는 남성적(그 놈, 참 자알! 생겼다) 혹은 여성적(어쩜! 예쁘기도 하지)이라는 구분만으로는 이수혁의 얼굴이 주는 질감과 느낌을 온전히 담아내기는 역부족이다.
뜬금없이 우주에 대해 말을 꺼내야 하나, 아님 주술에 대해 말을 꺼내볼까 하다가 황급히 떠오른 매혹이라는 단어로 모든 느낌을 봉합하기로 한다. 그런데 비단 나만이 그에게 매혹된 건 아닌 모양이다. 이수혁은 이땅에서 소위 ‘제일 잘나가는’ 남자 모델이 된 것이다. 나이는 이제 스물, 그에겐 일을 연결해주는 에이전시도, 매니저도 없다.

“제가 기억이 나는 순간부터 옷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유치원을 다닐 때에도 마음에 드는 신발이 있으면 사달라고 졸라 발에 신기고야 말았고, 중학교 때에는 거의 모든 용돈을 옷을 사는데 썼다는 이수혁에게 패션은 어느 순간 “당연한 것”이 되었단다.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 빠진 건 에디 슬리먼의 디올 옴므. 많은 남자들을 웃기고 울린 에디 슬리먼의 가학적이다 싶을 정도의 호리호리한 핏은 이수혁에겐 축복이었다.
“아는 형이 일본에 가게 되면 부탁하거나, 인터넷을 뒤져서라도 구했죠. 지금은 몸에 꼭 맞는 옷을 많이들 입지만 당시엔 사람들이 ‘쟤 바지 좀 보라며’ 들리는 소리로 수군대곤 했어요.”
고등학생 용돈으로 장만하기엔 어림없지 않냐고 물었더니 “거의 졸라서”라는 허허 실실한 대답이 돌아온다. 그렇게 조르면 디올 옴므를 안겨주던 너그러우신 부모님은 이수혁에겐 친구 같은 존재다.
“솔직히 남자애가 화장하고 다니고 그러면 안 좋아하실 법도 한데, 워낙에 멋을 부릴 줄 아시는 분들이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믿어주시는 긍정적인 분들”이란다.
그렇게 주변의 지지까지 받으며 자신의 느낌을 옷으로 표현하길 좋아했던 이수혁은 사실 딱히 모델 일을 염두에 두진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오랜 꿈은 ‘영화배우’라고.
“그렇다고 배우가 되기 위해 얼굴을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모델을 시작한 건 아니에요. 그냥 제가 매력을 느끼고 있는 패션에 조심스럽게 노크를 해본 거죠.”
워킹을 정식으로 배운 적도 없던 그가 찾아간 건 기라성 같은 남성복 디자이너 정욱준, 서상영, 김서룡, 최범석이다. 딱히 오디션이랄 것도 없이 직접 샵에 전화를 걸어 찾아뵙고 싶다며 약속을 잡고 ‘선생님들’을 만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어요. 선생님들 역시 어리둥절해 긴가민가하셨지만 다행히 찾아간 모든 컬렉션에 한 벌씩이라도 무대에 설 수 있었죠.”
지금으로부터 2년 전 그렇게 컬렉션 무대에 데뷔하게 된 이수혁은 점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자신이 참가한 두 번째 컬렉션에서는 “쇼를 끝내고 내려왔더니 당장 내일 쇼에 서줄 수 있냐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때 처음 사람들이 알아주는구나 생각했죠.” 런웨이에서 시작된 그의 이력은 자연스레 잡지화보로 연결 됐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그의 얼굴을 보고, 매혹되고, 수군대고, 열심히 스캔을 떠서 웹에 올리느라 바빠졌다.

그런 이수혁이 모델로서 확실한 방점을 찍은 건 정욱준의 론 커스텀 룩북에서다. 디자이너 정욱준이 파리 진출을 앞두고 사진집으로 대신했던 0708 F/W 컬렉션 룩북은 이수혁이 단순히 피사체로 기능하는 것을 넘어, 그만의 기운으로 가득한 표정과 포즈를 무덤덤하게 쏟아낸 감동적인 사진들로 가득하다.
특히 사진작가 김현성과 작업한 챕터는 할 말을 잃게 하는데, 더 이상 이수혁을 세우고 새로운 사진을 찍는다는 게 의미가 없지 않나 싶을 정도의 감흥을 주었다.
“그 작업이 더 재밌었던 이유라면 제가 참여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단 거예요. 예를 들면 아래 머리를 밀어버린 헤어스타일은 제가 영국에 갔다가 유심히 봤던 스타일인데, 컨셉에 맞을 것 같아 정욱준 선생님께 제안을 했어요. 선생님도 흔쾌히 좋다고 하셔서 과감하게 머리를 밀었던 거고, 메이크업도 제가 직접 한 거였고요. 포즈도 김현성 사진작가 분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제 것의 느낌으로 가져갈 수 있었어요. 그 분들이 나이도 한참 어린 저와 생각을 맞춰주셨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참 감사하죠.”
그렇게 이수혁이 강하게 어필하는 분위기는 음울하고 어딘가 어긋나있는 (그의 말을 옮기자면 ‘쎈’ 이미지) 것들이라 오히려 (패션이 소비되는 더 큰 축인)베이직한, 스포티한 이미지에서는 감점이 되기 십상이다. 이를 테면 애버크롬비 앤 피치의 건강한 남자들 사이에서 태닝한 얼굴로 헤벌쭉 웃고 있는 이수혁은 쉽게 상상이 되질 않는다. 사람들은 어느덧 그에게 기대하는 ‘그림’이 생겨버렸지만 모든 패션이 ‘그 그림’ 안에서 정리되는 건 아닐 터이니, 나는 그가 그러한 한계에 맞닥뜨려 있을 거라고 조심스레 짐작했다.
그러나 그는 정중하게 손사래를 쳤다. “제가 이제까지는 이미지를 만들어 가고, 어떻게 보이고 싶은가에 중점을 뒀다면 이제는 여러 가지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어요. 나중에 하고 싶은 것도 배우이다 보니 여러 가지 분위기가 나오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요. 아시다시피 저 아직 스무 살이고요, 천천히 생각해도 충분할 것 같아요.”
아뿔싸. 그랬다. 섣불리 정점을, 한계를 짐작하기에 그의 나이는 아직 너무 많은 가능성을 암시한다.

그 수많은 가능성 중 벌써부터 궁금해지는 대목은 해외 무대로의 진출이다. 그는 일찍이 에디 슬리먼이 디올 옴므를 지휘할 때 그 옷에 흠뻑 빠지기도 했지만, 그 무대에 섰을지도 모를 뻔 했다.
“런던에 일본분이 운영하는 옷가게가 있어요. 거기 사장님이 모델 몇 명을 데리고 있거든요. 그분이 저를 디올 옴므에 소개를 시켜준다고 했어요. 근데 대입 준비 때문에 부모님이 다음 시즌에 가라고 하셔서 포기를 했었죠. 물론 그때 일이 어떻게 풀렸을지는 모르지만 그런 기회가 있긴 했어요.” 그는 얼마 전 런던에 다녀오기도 했다. 탑샵과의 공동작업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한국인 디자이너 듀오 Steve J & Yoni P의 런던 컬렉션 무대와 KOMAKINO 컬렉션의 런웨이를 밟으며 첫 해외 진출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파리의 모델 에이전시와 계약을 하게 됐다는 반가운 소식까지 덧붙였다.
“제 체격이나 이미지로 밀란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고, 파리 정도면 괜찮을 거 같았어요. 파리엔 제가 가장 서고 싶은 무대이기도 한 디올 옴므와 라프 시몬이 있기도 하고요. 외국은 항상 나가고 싶었어요. 활동도 활동이지만 그곳에서의 생활 같은걸 꼭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또 모르겠어요. 의사소통이나 그런 것들이 원활하지 않은 상태로 가서 제 느낌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해요. 봄이 오면 파리로 옮겨갈 계획이긴 한데 이게 또 생각이 변할지도 모르겠어요. 섣불리 행동하고 싶진 않거든요.”

이수혁은 인터뷰 내내 저음의 목소리로 차근차근 말을 골랐다.
“일단 저 어린 것도 어리고 생각이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인터뷰를 통해 뭐가 이렇다 저게 저렇다 말하기가 항상 곤란해요. 아직 저도 잘 모르는데...뭔가에 정의를 내리는 건 어려운 것 같아요. 궁금한 것들은 궁금한 것으로 남겨두는 게 좋기도 하고요.”
아니나 다를까 이제껏 인터뷰를 잘 하지도 않았지만 진행한 인터뷰도 워낙 들려준 얘기가 없어 기사화 되지 않은 것들이 많았단다.
그의 그런 화법처럼 이수혁은 카메라 앞에서도 유난스럽지 않았다. 조용하고 다부진 아이의 손에 쥐어진 장난감이 아이의 진중한 시선을 통해 돌봄을 받듯이, 그는 카메라를 돌보는 아이처럼 가만가만한 에너지로 렌즈 앞을 서성였다.
그렇게 촬영은 일사천리로 끝났다. 궁금한 이야기는 궁금한 대로 남겨두고 그를 배웅할 차례다.
캠프파이어에서 만나 다음을 기약하는 친구들처럼 행운을 빌며 들뜬 인사를 건넨다.
시간이 흘러 그를 다시 만난다면 턱을 괴고 앉아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뜨거운 손뼉을 쳐야지.
이수혁의 진짜 재밌는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된 것 같으니까.

글.김신형 사진.박명화
(매거진 am.i vol.7)
by playtime | 2008/01/15 02:40 | you look good to me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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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카프카 at 2008/01/23 12:03
네이버 디매에 좀 올릴게요^^
Commented by 카프카 at 2008/01/23 12:03
출처는 밝히겠습니다^^
Commented by ^-^ at 2008/01/23 12:18
글 잘 봤습니다.
질문 드릴게 있습니다.
이 잡지 판매하는 곳이나 이 잡지의 홈페이지 알 수 있을까요
(검색해봐도 안나오더라구요)
Commented by 순딩이 at 2008/03/26 23:48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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