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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숱한 화제를 뿌리며 종영한 미니시리즈 <커피프린스 1호점>의 이슈라면 한두 가지가 아닐 테지만 '자뻑 하림' 김동욱의 발견은 그중 단연 돋보인다. 그는 ‘어딘가에서 만들어져 우리에게 던져진’ 배우라기보다는 ‘우리가 함께 소리쳐 발견한’ 배우에 가깝다. 모두가 말했다. 저기 저 남자아이는 누구냐고. 우리가 발견한 만큼 우리는 이 남자아이에 대해 조금은 더 알 필요가 있다. 요즘 무척 바쁘겠다. 이제 막바지다. 돌아오는 주말 마지막 촬영이 남았다. 며칠 전에 ‘마지막 잔’이라고 적힌 대본을 받았는데 감회가 무척 새롭더라. 바쁜 시기를 지나면서 가장 힘이 된 건 무엇인가? 제일 힘이 되는 건 항상 가족이다. 지금은 동생과 둘이 살고 있는데 부모님께 전화를 자주 드린다. 근래에 시간이 부족해지면서 오히려 전보다 더 전화를 드린다. 부모님 목소리를 들으면 아 내가 열심히 해야겠다, 나태해지지 말아야겠다, 다짐을 하게 된다. 고3때 가출을 한 적이 있다고? 아니! 얘기가 그렇게 흐르나?(웃음) 어느 날 문득 연기가 하고 싶어졌다. 근데 집에서는 워낙 갑작스럽게 그러니까 씨알도 안 먹히지. 내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편지를 써놓고 3일 정도 집을 나간 거다. 친구 한명과 강원도 쪽을 돌았는데 진짜 한 거 아무것도 없고 술 먹으면서 바람 쐬고 그랬다. 친구는 계속해서 “너 진짜 그게 하고 싶냐?” 묻고, 나는 계속해서 “진짜. 진짜. 하고 싶다”고 대답하고. 청춘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집에 돌아오니 반응은 좀 있었나? 내가 돌아온 날이 하필 명절이었는데 온 가족이 모여서 “가출 소년이 돌아왔네!” 박수치면서 좋아하더라.(웃음) 그런데 그러고 나선 정확히 얘길 안 해주는 거다. 하라는 건지, 하지 말라는 건지. 그래서 어느 날 술을 엄청 먹고 아버지한테 전활 했다. 데리러 온 아버지 앞에서 나 진짜인 것 같다, 정말 정말 하고 싶다, 잘 할 자신도 있다고 했더니 그제야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한번 해보라고 허락하셨다. 그렇게 들어간 학교가 그 들어가기 어렵다는 연극원이다.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5개월뿐이었다. 어렵게 허락을 맡은 터라 최고라는 학교에 들어가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래서 수능은 포기하고 연기 학원 다니면서 연극원 준비에만 올인 했다. 연극원에서는 어땠나? 연기를 못한다고 매일 혼났다. 연기수업에서 다른 사람은 삼십분이면 끝나는 발표를 나만 항상 두세 시간씩 걸리는 거다. 제일 많이 들었던 얘기가 “왜 말을 못하냐?” “왜 안 듣냐?” “왜 거짓말 하냐?” 그때는 그 말들이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 그 말이 뭔지 모르니까 지적을 받아도 나아지질 않는 거지. 그렇게 2년을 힘겹게 보냈다. 그러다가 몸이 안 좋아서 한 학기를 휴학하고 6개월 만에 돌아갔더니 그제야 교수님께서 연기가 많이 늘었다고 하시더라. 왜 그런 얘기를 들었는지는 사실 아직도 모르겠다. 6개월 동안 쉬면서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아예 손을 놓고 있었거든. 영화나 드라마도 전혀 보지 않았다. 연기에 대한 스트레스를 엄청 받아서 아예 잊고 살았다. 그저 지금 생각하면 그 고민들이 나를 조금이나마 성숙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 뿐이다. 영화 데뷔작이 <발레교습소>다. 학교 특성상 영상원에서 만드는 단편영화들에 출연할 기회가 많았다. 그때 함께 작업한 스텝이 <발레교습소>의 스텝으로 들어가면서 내게 오디션을 보라고 추천을 했다. 근데 그때 나는 군대 입대를 계획하고 있었기에 망설였는데, 주위에서 다들 무슨 소리냐며 군대는 나중에라도 갈 수 있다고 오디션을 보라고 권했다. 그리고 그게 덜컥 붙은 거다. 덕분에 아직 군대를 못가고 있다.(좌중 웃음) 첫 장편의 기억은 어떻게 남아있나? 사실 난 영화라는 매체는 생각지도 못했다. 학교의 커리큘럼이 연극인을 배출하는 시스템이어서 극 무대만 생각했다. 내가 연기라도 잘했으면 영화나 드라마도 생각했겠지만 말했다시피 매일 혼나던 아이였기 때문에 감히 영화도 해볼까?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어색하고 얼떨떨하고 쫓아다니기 바빴던 것 같다. 내가 해야 될 것, 실수 안하고 해야 되는 것, 그런 생각들뿐이라 재미고 뭐고 느낄 겨를도 없었다. 그래도 참 다행인 건 그때 만났던 배우들이(윤계상, 김민정, 온주완, 이준기 등) 큰 도움이 됐다. 그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이 일을 계속 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이후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유독 퀴어영화가 눈에 띈다. 남들은 평생 한편도 못하는 배우들이 많은데 벌써 3~4편 되지 않나? 이전 작품을 염두하고 캐스팅된 경우는 없는데 우연찮게 기회가 그쪽으로 가더라. 나도 몰랐는데 인터뷰 하면서 기자 분들이 지적해줘서 그제야 많이 하긴 했구나 깨달았다. 관객 김동욱이 좋아하는 영화는 뭔가? <칼리토>처럼 남성적인 선이 느껴지는 영화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마초적인 기질이 강하고 그런 건 아닌데, 어렸을 때 남자애들하고 어울려 다니며 운동만 하면서 놀던 게 은연중에 남아 있는지 그런 남성적인 영화들이 좋다. 김동욱 인생에서 가장 Rocking한 순간이라면 뭐가 있을까? 중학교,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아마추어 팀을 만들어서 춤 연습하고 동대문 같은 데서 공연도 하고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에 지하보도가 생겼는데 우리한텐 거기가 최고인거다. 전기도 공짜로 쓸 수 있지, 지하보도니까 사람들도 잘 안다니지, 여름엔 시원하지. 매일 친구들하고 춤추고 놀고 그랬다. 근데 그 때 그 지하보도가 우리로 인해 폐쇄가 됐다. 청소년 탈선의 현장이라고.(좌중 폭소) 어느 날 학교 끝나고 갔는데 철조망이 쳐있고 ‘청소년 탈선 현장의 주범’이라는 팻말과 함께 폐쇄가 됐다. 혹시 지금은 어떤지 아나? 뚫어놓은 걸 막진 않았을 테고... 없어졌다. 뚫은 걸 막았다더라.(좌중 폭소) 충분히 Rocking한가? 충분하다.(웃음) 짬짬이 시간이 나면 야구장 가는 걸 좋아한다고? 그건 진짜 뭐라 말로 표현을 못하겠는데, 야구장에 들어갈 때 제일 흥분되는 건 계단을 올라가면서 가려져 있던 그라운드가 훤히 보일 때! 그 희열이 가장 크다. 그라운드를 보면 경기 시작하기도 전에 막 흥분이 된다. 그건 아 진짜! 또 공을 치면 울려 퍼지는 땅! 소리. 사실 경기장에선 잘 모른다. 땅 소리는 났는데 안타인지, 파울인지. 공이 뜨면 찾기도 힘들거든.(웃음) 뭐야? 안타야? 파울이야? 그런 순간들이 좋다.(웃음) 지금 김동욱은 무사 1루 찬스를 만들고 출루해 있다. 장타자의 폭발력은 아직 모르더라도 게스 히터의 가능성은 충분히 보여주었다. 자, 이제 도루를 시도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배터 박스를 기다릴 것인가. 어쩌면 너무 성급한 고민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지금 자신이 서고 싶었던 그라운드를 밟고 서서 마냥 행복한 웃음만을 짓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또 그는 타자가 홈까지 돌아오는 데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 1루라는 것도 이미 느긋하게 알고 있을 테니까. 글.김신형 사진.장요셉 (매거진 am.i vol.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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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의 명복을 빕니다.
by _app_ at 05/08 히히 얼굴한번보자 by 김정은 at 04/27 아니 이게 누구야!!!!!! by playtime at 04/26 잘 지내? 갑자기 생각나서 .. by 김정은 at 04/26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by 순딩이 at 03/26 글 잘 봤습니다. 질문 드릴.. by ^-^ at 01/23 출처는 밝히겠습니다^^ by 카프카 at 01/23 네이버 디매에 좀 올릴게요^^ by 카프카 at 01/23 꺅//ㅂ// 연경씨 너무 좋아요... by 제절초 at 01/15 bedside table!!!!!!!!!!!!!!!!!!!!!.. by 좀비씨 at 11/05 최근 등록된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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