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oby dooby doo 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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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둥그니까
저녁엔 손님이 왔었다.
활짝 열어둔 창으로 고기 굽는 냄새가 아득하게 건너와 참을 수 없이 허기가 져서 구운 토마토와 파스타를 오물오물 먹고 있었는데, 문을 열자 복도에 친구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지구만한 수박을 가슴에 안고 서 있었다.
미안한데 세수 좀 해도 될까.
헤에 웃으면서 욕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오늘도 현관에 어지럽게 벗어놓은 친구의 신발을 오늘은 왠일인지 정리하지 않고 식탁으로 돌아왔다.
별 이야기는 없었다. 병원 진료에 대해 물었고, 나는 치과와 정형외과 순으로 잡혀있는 내일의 스케줄을 일러주고 한결 가벼워진 통증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도움이 필요하면 꼭 꼭 자기에게 부탁하라고 당부하는 말에 으쓱 기분이 좋아져서, 수박을 좀 더 빨리 차갑게 하려고 샌프란시스코와 테헤란 사이쯤에 칼을 대고 지구를 반토막 내 냉동실로 급히 옮겼다.
차가워지는 동안 아홉시 뉴스가 끝났고 드라마를 보면서 수박을 먹었다.
여기도 불륜, 채널을 갈아타도 불륜이었다.
특히나 김희애가 나오는 쪽은 모든 등장인물들이 프로페셔널하게 기쁨과 증오를 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요즘 내가 지쳐있던게 무엇이었는지 조금은 알겠더라, 또 지금 내 앞에서 가만히 수박을 먹으면서 말 끝을 맺지 못하고 있는 이 친구가 왜그렇게 특별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나는 엉덩이부터 만질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 단순함을 프로페셔널하게 말할 재간도 있다.
손? 누구의 손 말인가? 나는 한번도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싶은 적이 없었다.
언젠가 이 친구가 '거리'를 말하는 내게 드디어 처음으로 말 끝을 맺고 '깊이'를 말해주었을 때, 그러나 라고 대꾸했지만. 수박껍질이 수북히 쌓여갈 때 쯤 되자, 내가 마중해 줄 정류장이 설령 테헤란이라도 손 붙잡고 행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by playtime | 2007/06/19 08:50 | partner detail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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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yamcheogng at 2007/06/19 18:34
지잉.
네가 선곡하는 노래들도 좋지만, 네가 쓰는 글들은 5배쯤 더 좋아해.
네가 손잡고 걷는 그 밤이 벗꽃 핀 밤이나, 열대야라는 상상을 보태고 있는
내가, 어쩌면 이게 나구나 하는 생각도 한다.
누군지 궁금하네, 지구를 안고 땀을 뻘뻘 흘리며 나타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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