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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잠을 자볼까 하는데 선풍기가 배달돼 왔고, 땀을 한바가지 쏟으며 조립을 마치니 바로 오늘이 시차 역전의 날이구나 했다. 낮에 오랜만에 깨어 있자니 뭔가 아득한 기분. 비가 그친 하늘은 꾸물꾸물하니 곧장 잠에 떨어질 분위기를 풍겨서 안되겠다 핑계라도 대서 나가야겠다 싶었다. 노선은 두가지였다. 홍대역쪽으로 나가 왓슨스와 아름다운 가게를 둘러보거나 서강대교 쪽으로 나가 농협 마트와 dvd 대여점을 들르거나. 홍대쪽으로 나가면 괜히 들어오면서 커피라도 한잔 사마시지 않을까 싶어 한푼이라도 아끼자고 서강대교 쪽으로 발길을 틀었다. 또 뭔가 쓸모있는 물건에 앞서 당장 먹을 게 필요하기도 했고. 나가는 길엔 우체국엘 들렀다. 얼마전 불현듯 생각난 게 군대에 있을 때 만든 통장의 존재였는데, 당시 병원으로 옮기던 중 증발했고 이후로는 영영 만날 수 없었다.(나는 국방부에서 친히 우편발송이라도 해줄줄 알았다) 분명 한달치든 두달치든의 육군 월급이 저축돼 있을 그 통장을 나는 찾고 싶었다. 어쨌든 그것은 나의 월급이니까. 농협이던가 아리까리해 몇달 전에 농협을 갔는데 그런 통장은 없지만..이라고 하면서 대신 오천얼만가가 든 통장이 하나 살아있다고 하길래 돈을 찾아서 담배를 샀던가 그랬다.그렇다면 분명 우체국인데..하면서 늘 염두해두곤 있었지만 은행 업무 마감시간이 대개의 기상시간이니까 뭐. 두달만에라도 찾아간 건 정말 대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체국 직원은 골몰하는 듯 하더니 계좌가 하나 있네요 하면서 군대에서 만든 통장이라고 덧붙였다. 트릭은 풀렸어라고 외치던 김전일 소년의 기분이 꼭 이럴까. 거 괜찮대. 주책맞아 보이긴 싫어서 약 2분 정도의 뜸을 들이고 '그런데 잔액은 얼마?' 삼만칠백팔십원의 원금이 천삼백구십사일을 묵혀 칠십원의 이자가 발생해 삼만팔백오십원이 되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금액의 아쉬움은 있었지만 커피 한잔에도 벌벌 떠는 요즘 같아선 삼만팔백오십원이든 삼만칠백팔십원이든 감지덕지 아아 전우의 시체를 넘고넘어 노래라도 부를 수 있겠더라. 그런데 또 얄팍하지. 그 얼마간의 돈을 쥐고 환호라도 부르려는데 70원의 이자가 붙는 동안 이따금 쫄기도 하면서 위태위태 넘어 온 몇몇 순간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대. 은행은 언제나 똑똑하기 때문에 시간을 분명하게 기록해두고 있는데 덕분에 새삼 돌아 본 어떤 파트의 시간 중 하필이면 그렇게 구질구질한 것만 떠오르더란 말이다. 당장 해야 할 일은 흔적없이 또 기분 좋게 그 돈을 써버리는 것이었다. 다행히 근처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떡볶이 집인 서강 할매 분식이 있었기 때문에 일단 그곳에 들어갔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지 않고도 가장 맛있는 떡볶이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기분 돋구기엔 그만 아니던가? 왠일로 손님이 아무도 없어서 튀김을 고를 때도 시간을 충분히 갖고 모험을 꾀하며 단골 여중생들에게 잇 아이템인(그러나 나는 상상할 수 없는 맛에 한번도 시도해보지 못했던) 식빵 튀김을 고르는 여유까지 부린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좀 이상하다. 떡볶이의 맛은 여전히 환상이고, 또 식빵 튀김도 대단히 그럴싸한 맛을 뽐내며 오뎅과 뒹굴고 있는데 내가 씹고 있는 떡볶이 소리를 참을 수가 없겠는 것. 거의 항상 혼자서 먹고 오는 곳이기에 서강 할매도 내 얼굴을 기억하고 계시는데 언제부턴가 나를 별로 반기지 않는 것 같더니..이 소리가 싫으셨던건가 이런 어이없는 생각까지 들더란 말이다. 떡볶이집의 손님이란 대개 둘 혹은 셋이기에 또 여중생들 한 그룹이라도 들어오면 노량진 수산시장 저리가라로 시끌벅적 하기에 그들에게서 떡볶이 씹는 소리를 캐치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처럼 혼자 오는 사람이라면 서강 할매는 자신이 즉석에서 만들어준 떡볶이를 탐하는 후루룩짭짭 소리를 고스란히 견뎌야 하는데 이게 또 끔찍할 것 같기도 하더라고. 분명한 건 서강 할매가 언제부턴가 나를 보고 쓴 미소를 짓는다는 것.(또 오늘은 문 밖에 괜히 나가 서 있기도 하셨다) 그게 떡볶이 씹는 소리 때문이라면 서강 할매에게도 나에게도 정말 슬픈 일이 아닌가? 기분을 돋구기는 커녕 뭔가 울컥한 기분이 되어서 나가려는데 서강 할매는 '오늘 떡이 좀 적었나?' (다 알고 있어요. 할매.) '아니에요, 잘 먹고 갑니다' 대개의 이별은 이런 것이 아닐까. 마트에 들어가서는 미친듯이 물건을 담기 시작했다. 김치 한포기를 포장하고, 의성 마늘햄 한 팩, 뜬금없이 복숭아 통조림을 황도와 백도로 구분해가며 한 캔씩 담고, 호박 시루떡과 꿀떡에 유과 한봉지, 메밀맛면과 물 먹는 하마 같은 계절 아이템까지 챙기니까 금액도 앵꼬지만 더이상은 들고오지도 못하겠더라. 그래 언제나 나를 안심 시키는 것은 일용할 음식들이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은 쇼핑 바구니의 무게였지. 나는 집으로 돌아와 물 먹는 하마를 벗겨 침대 아래와 옷장에 넣어두고, 황도 캔 하나를 까 먹고 잠에 들었다가 원인모를 몸살 같기도 감기 같기도 한 괴병에 걸려버렸다. 월하의 공동묘지에 출몰하는 처녀귀신처럼 일어나서는 별 수 있나? 백도 통조림 뿐이었는데 먹으면서 본 뉴스의 해외 토픽에서는 패리스 힐튼이 교도소에서 풀려났다는 소식을 전하며 옥중에서 그린 그녀의 자화상 엽서가 화제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눈을 괘슴츠레 해가지고 동그랗게 말아 뜬 언니의 그림 속 눈동자를 보자 '그래 언니, 언니라도 코 좀 들고 사슈. 이게 뭐유? 흘쩍. 들 수 있으면 있는 만큼 들고 살아야지' 저 언덕 위에 올라선 선구자가 말하지 않았던가. '달려라 하늬가 아니라, 달려야 하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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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의 명복을 빕니다.
by _app_ at 05/08 히히 얼굴한번보자 by 김정은 at 04/27 아니 이게 누구야!!!!!! by playtime at 04/26 잘 지내? 갑자기 생각나서 .. by 김정은 at 04/26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by 순딩이 at 03/26 글 잘 봤습니다. 질문 드릴.. by ^-^ at 01/23 출처는 밝히겠습니다^^ by 카프카 at 01/23 네이버 디매에 좀 올릴게요^^ by 카프카 at 01/23 꺅//ㅂ// 연경씨 너무 좋아요... by 제절초 at 01/15 bedside table!!!!!!!!!!!!!!!!!!!!!.. by 좀비씨 at 11/05 최근 등록된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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