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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비의 신작 앨범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는 로켓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 하늘색 캐리어를 촬영소품으로 쓰고 싶다고. 집에 몇번 오지도 않은 놈이 용케 기억하고 있었네. 나의 처량한 하늘색 캐리어, 몇년 전 아름다운 가게에서 오천원에 산 구형 샘소나이트다. 살 때도 여행용으로 들고 다닐 생각보다는 집 안의 분위기나 돋구는 인테리어 소품으로 생각한 건 사실이다. 그래도 인천앞바다 한번 다니지 못하고 옷장 위에 얹혀져 온갖 잡동사니만 끌어 안고 사는 꼬라지를 보면 동물원의 코끼리 마냥 참 안쓰럽더라. 잡동사니를 다시 끄집어 내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은 꽤나 끔찍했지만 그간 미안함의 보상이라고나 할까, 바람이라도 쐬어줄 겸(촬영지가 바다라고하니 핑계 한번 그럴싸하고!) 빌려주겠노라고 오케이 했다. 만나기로 한 동네 카페까지의 길이 여행가는 길 처럼 설레였다. 지나치는 사람들도 색깔 때문인지(원이가 본다면 소리 한번 요란하다고 좀 조용히 하라고 했겠지) 또 으레 캐리어를 끌고 가는 사람들은 좀 부럽게 쳐다보게 되지 않나? 뭐 그랬는지 힐끗힐끗 쳐다들 보길래 더 우쭐거리면서 팔랑팔랑 힘차게 걸어가 내가 캐리어를 산 가격보다 비싼 따끈한 파니니와 커피를 대여비 명목으로 선사 받았다. 잡동사니는 대개 추억이랍시고 모셔둔, 사실 앞으로 별로 쓸모는 없을 것 같은 것들만 잔뜩인데 왠지 버리기는 겸연쩍어 그렇게 둔게 박스로 두개나 더 있다. 그래도 캐리어에 모셔둔 건 나름 1등품 잡동사니였다. 우선 캐리어의 가장 위에는 초등학교 때 산 대형 부루마블 게임이 올려져 있고 그것을 들어내면 중학교 때 부터 사용한 각양각색의 수첩들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정리를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또 정리가 은근히 감정노동인건 이런 거 보이면 꼭 펼쳐보기 때문이다. 그 정리란 게 이 가방에서 다른 가방으로 잠시 옮기는 일일 뿐이어도 말이다. 15살, 영화 노트 no.2 센스 앤 센서빌리티. 엠마 톰슨이 촬영 도중 케네스 브레너와 이혼하고 이 영화의 윌러비로 등장하는 그렉 와이즈와 사귀는 중이다. 엠마 톰슨 생긴건 그렇게 안생겼는데. 뒷구멍에서 호박씨 잘까네. 17살, 수첩을 왔다갔다 하며 친구와 대화한 듯 나 오늘 깰꺼야. 혜진이는 나 좋아해주는 거 같어. 근데 내 맘을 잘 모르겠어. 너무 헷갈려. 처음부터 좀 어색했어. 처음부터 그랬어. 20살, 밤 샐 수 밖에 없던 날들에 대한 증언들이 한가득 4월 1일. 나비를 신촌에서 만남. 베니건스에서 쏘는 우리의 나비. 오! 멋져! 홍대앞서 안뉼 만나서 옹기종기 마트마타. 어찌나 재밌는지. 어색한 춤솜씨. 니가 그리운 날에도 갔지요. 오늘도 밤새 놀았지요. BIC 라이타 귀여워. 21살, 누군가의 낙서 신형 배고파아! 으그그그 신형은 엘리제의 토끼. 22살, 군 병원에서 엄마. 외로운 둘리는 귀여운 아기공룡. 호이호이- 둘리는 초능력 내 친구. 몰라몰라몰라몰라. 또 홀연히 떠나간 아빠의 물건들도 가방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사를 하면서 엄마와 물건을 분배할 때 엄마가 이 물건들을 내게 부탁한 기억이 난다. 마음대로 버리자니 미안하고 그렇다고 당신이 가져가기도 싫다면서 '그래도 너라면 살면서 언젠가 한번쯤 만나지 않겠니?' 그렇게 내게 온 그것들은 앨범 두권에 어릴 적 사진들과 그가 총명한 아이였다는 풍월을 입증하는 온갖 상장들이 가득이었다. 솔직히 이참에 버려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누군가의 사진을 버린다는 것은 참 내키지 않는 일이더라. 또 혹시 아나? 어딘가에서 그가 거부상의 모습으로 돌아와 아들을 찾고 이어지는 눈물의 퍼레이드. 그때 이 앨범은 아주 효과적일 것이다. 2000년의 보그도 몇권 가지고 있는 내가 앨범 두권 쯤 보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내 하늘색 캐리어는 오늘 밤 바다로 떠난다고 한다. 바람 와방 쐬고 돌아오길. 행여 이곳으로 돌아와 다시 이놈의 잡동사니를 끌어 안고 사는게 영 껄끄럽다면 홀연히 떠나도 좋다. 단 인편에 히데오 와카마츠의 컨버스 캐리어를 보내라. 나도 와방하게 새삥한 기억 좀 쌓아보게. 그래, 착불까지는 용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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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의 명복을 빕니다.
by _app_ at 05/08 히히 얼굴한번보자 by 김정은 at 04/27 아니 이게 누구야!!!!!! by playtime at 04/26 잘 지내? 갑자기 생각나서 .. by 김정은 at 04/26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by 순딩이 at 03/26 글 잘 봤습니다. 질문 드릴.. by ^-^ at 01/23 출처는 밝히겠습니다^^ by 카프카 at 01/23 네이버 디매에 좀 올릴게요^^ by 카프카 at 01/23 꺅//ㅂ// 연경씨 너무 좋아요... by 제절초 at 01/15 bedside table!!!!!!!!!!!!!!!!!!!!!.. by 좀비씨 at 11/05 최근 등록된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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