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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ff를 기다리며, 우주인

Piff, 즉 부산국제영화제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우선 줄을 잘서는 것이 필요하다. 인기 있는 영화들이라면 단 몇 분 만에 매진되기 일쑤니 예매 개시일의 오프라인 예매처와 인터넷, 폰뱅킹 등 영화의 바다로 가는 첫 번째 관문들은 영화 팬들의 설레는수고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것이다.

여기 우리 앞에 선 우주인은 지난 몇 년간 서울 예매처의 핵심인 부산은행 종로점 예매 순위 1등을 놓치지 않고 있는 단골손님이다. 인터넷과 폰뱅킹은 자신이 손쓸 수 없는 ‘폭주 상황’이 걸릴까 겁이 나서 가장 안전하고 아날로그적인 은행 창구 예매를 선호하며, 1순위를 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일터인 비스트로의 근무를 마친 밤 9시 무렵 나와 줄을 서왔다.(그렇게 꼬박 밤을 새워 표를 예매하고 그녀는 다시 출근! 한다고 했다) 밤 11시 혹은 12시쯤 도착하는 예매 2순위와는 올해 가장 먼저 매진되는 영화는 무얼까 점찍어 보기도 하고, 부산의 식당이라거나 숙박이라거나 알찬 정보를 나누기도 하며, 음악을 듣거나 책을 보다가 깜빡 잠이 들기도 한단다. 그렇게 보낸 밤의 끝에 은행의 셔터 문이 열릴 즈음에는 이미 은행 앞은 기나긴 행렬이 형성되어 있는데, 가장 앞자리에 선 그녀는 의기양양하게 희미한 미소를 띠며 (마치 판관 포청천처럼 확신에 찬 목소리로) ‘모두가 보고 싶어 하는 영화’를 은행 창구에 대고 호명하는 일만이 남은 것이다. 그 은행 창구의 직원은 언제부턴가 “올해도 1등이시네요.”라고 그녀를 기억해주기도 한다고. 이 얼마나 흐뭇한 광경이더란 말이냐.

줄을 서본 기억이라곤 엄마 손에 이끌려 간 엑스포에서 관람을 기다리던 어렴풋한 기억밖에 없다는 우주인에게 부산으로 가는 영화 티켓이 도대체 무엇 이길래? “1년에 한번 있는 휴가이자 피크닉. 삶의 원동력”이란다. 언젠가는 “내가 1년에 한번 부산에 가려고 살고 있는 느낌”마저 들 정도라니 증세가 보통은 아니다. 그 부산의 영화들로 말할 것 같으면 “영영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영화를 누구보다 일찍 볼 수 있다는 점도 좋지만, 그맘때 부산의 분위기...휴가철이 지난 해운대도 빼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만났던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허우 샤오시엔의 <카페 뤼미에르>인데, 지루하게만 생각했던 그 대만감독의 가만가만한 느낌, 자신의 상황이었어도 ‘분명히’ 저랬을 것이란 감정이입을 하면서 ‘자신의 영화’이자 ‘부산의 영화’가 되었다고 말한다. 아니나 다를까. 허우 샤오시엔의 새로운 영화 <빨간 풍선>이 이번 1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돼 우주인에겐 1착 티켓팅의 대상이라고.

그녀는 뜸을 들이다가 이런 말도 덧붙였다. ‘내가 이렇게 열정을 쏟을만한 일이 없나?’ 라고 이따금 걱정이 든다는 것이다. 줄을 서는 것이건, 세계 평화를 사수하는 일이건 중요한 것은 열정의 온도라고, 당신의 온도는 충분히 훈훈하다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해줬다. 나는 그녀를 만나러 일을 한다는 비스트로에 들러 직접 만든 샌드위치를 대접받았는데, 초롱초롱 눈을 밝히며 빵의 질감부터 토핑의 밀도까지를 걱정하는 그녀의 ‘또 다른 온도’를 이미 확인한터였다. 그토록 ‘뜨거운’ 우주인을 다른 행렬에서도 목격할 수 있냐고? 글쎄.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한국에 오지 않는 한 그 모습을 쉽게 보긴 어려울 것 같다.

글.김신형 사진.최영교
(매거진 am.i vol.6)
by playtime | 2007/09/23 21:02 | you look good to me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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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지효 at 2007/09/24 22:24
와- 글 좋다.
Commented by 얌체공 at 2007/10/04 14:57
그래, 난 신형의 글이 참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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